본문 바로가기

재미.있는.이야기/내가.지은.이야기

<미래에 대한 가십> 2탄


 우리 회사의 CEO인 P의원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전 부인인 K의원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녀는 원래 작가지망생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두뇌는 어떤 상황에든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성해내고 있었다. 생각해내는 것이 무엇이든 어떤 개그맨의 이야기보다 웃겼고, 어떤 지식인의 이야기보다 가치로웠으며, 어떤 시인의 언어보다도 고귀했다.

어떤 날인가는 하루 종일 기발한 생각들이 마구 쏟아지는데, 그 톡톡 튀는 생각들이 너무 아까워 받아 적으려고 보니 그것들이 얼마나 빨리 쏟아지던지 다 받아 적기도, 다시 기억해내기도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 말대로 그녀가 정말 천재였다면 그 쏟아지는 생각들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 텐데 그렇지 못한 걸 보면, 그녀 혼자만의 주장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기똥찬 것을 하나 생각해내었다. 「나의 생각을 모두 녹음할 수 있는 녹음기가 있다면 참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버리기 아까운 기막힌 생각들, 지금 이 순간 꼭 기억해 두어야할 어떤 추억들을 고이고이 저장해두고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말이다.

그녀는 그 녹음기 생각으로 며칠 밤을 지새웠다.

「그래! 사람들의 생각을 담당하는 뇌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무언가를 기억하는 무의식, 그것들 안에 흐르는 생각과 느낌들을 문자화해서 녹음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 된다!」

다른 때 같았으면 신춘문예 바람에 끙끙 앓았을 12월, 작가 지망생 K는 애초에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았던 문학에의 꿈을 단숨에 접어버리고 그 기막히고 기막힌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그 생각을 우리나라 정보산업의 선두주자인 <MT그룹의 아이디어 공모전>에 출품하게 되고, 그녀의 기획서는 당당히 대상으로 뽑히는 영예를 누린다.





 우아하고 리듬감 있게 노트북을 두드리며, 손이 문드러지도록 평생 글만 쓰고 살겠노라는 생각만 하고 있던 그녀였다. 그러나 <MT그룹의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그녀의 아이디어가 대상을 받게 된 그 사소한 사건이 그녀의 인생과 이 세상의 미래에 큰 획을 긋는 대단한 사건이 되었다. 공모전 대상수상자의 부상으로 그녀는 MT 그룹의 인턴사원이 되었고, 아무도 몰랐던 그녀의 사회성이 빛을 발하는   역 간!

 
 MT그룹에서는 그 녹음기에 대한 연구를 곧바로 시작하였다. MT그룹의 정보기술개발팀이 밤낮을 지새우며 연구를 하는 동안, 갓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그녀는 비상한 두뇌와 능숙한 조직생활로 급속한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가 한 일이라곤 고작 ‘생각녹음기’의 아이디어를 고안해낸 것 밖에는 없지만 <밤새워 폭탄주 마시기>, <폭탄주 마시고도 아침 7시에 출근하기>, <지루한 부장님의 노래에 박수치며 아부하기>, <술 먹고 남의 비밀 들어주기>를 열심히 했더니 승진은 제 발로 따라왔다. 물론 <우아하고 리듬감 있게 노트북 두드리기>라는 그녀의 주특기도 한 몫을 해 내었다.



  인턴사원에서 평사원으로 평사원에서 임원진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500원짜리 동전으로 인형 뽑기를 하고, 남은 돈으로 짜파게티를 사서, 삼선 슬리퍼를 찍찍 끌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녀가 이제는 기사달린 검정차를 타는 대기업 최연소 임원의 삶으로 바뀌었다.

 
 
 언론은 그녀를 그냥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초고속 승진, 최연소 임원의 주인공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용화 되어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된 <생각녹음기>의 창안자, 천재 K 라고까지 불리는 유명인이 된다.

 

 유명인이 된 후 결혼하게 된 것인지, 결혼을 하게 되어 유명인이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K는 그 여세를 몰아 그 그룹의 계열사인 MT레코드의 사장과 결혼에까지 골인하게 되는데, 그 MT레코드 사장이 바로 우리 회사의 CEO이신 위대하신 P의원이다.

 



 세기의 결혼이라 할만 했다. 신입사원에서 급속한 승진으로 MT그룹의 이사가 된 K와 MT레코드의 사장인 P의 결혼. 그들이 결혼하던 2018년 5월 20일은 ‘생각녹음기’의 상용화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각각 정계진출을 선언한다. 재계에서 정계로 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돈은 있고, 명망이 필요했다. 명망? K는 ‘생각녹음기’를 고안해 낸 천재, P는 우리나라 최대의 연예사업가. 이 정도의 명망이면 남에 비해 뒤떨어지지는 않았다. 정치권이라고 해봤자, 감옥 몇 번 갔다 온 사람, 서울대출신, 주먹을 잘 쓴다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하니까, 명망이란 게 엉망인 곳이었다.

 K와 P는 각각 다른 정당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P는 녹색우주당의 비례대표로, K는 일명 사자당이라고 불리는 사회자유당의 강남구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사자당은 여당이었고, 녹우당은 야당이었다.

 
 어떤 인터뷰에서 K는 참으로 멋진 말을 했다. 「누구나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많을 뿐이지요. 생각녹음기는 그 표현에 서툰 사람들의 생각을 정확히 끄집어내어서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도울 것입니다. 누군가의 잃어버린 추억을 찾아줄 것이고,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중요시하던 그녀가 뭔가 남편과 소통의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둘의 엇갈린 정치행로는 사람들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K의원과 P의원 불화설’, ‘슈퍼그룹을 만들기 위한 정략결혼’ 이라고 적힌 신문이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었으며, 모두가 위태위태한 그들의 결혼 생활이 어떻게 결론 날지를 궁금해 하고 있었다. 결혼 생활이 결론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들 사이에는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그 사이 P의 회사, 즉 우리 회사에서는 개인BGM선곡가라는 것을 최초로 고안하여 상품화 시키는 작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작업과 동시에 그들의 결론도 보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