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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이야기/내가.지은.이야기

<미래에 대한 가십> 1탄


  남자는 한숨을 쉬었고, 거기에서 나온 수증기는 공기 중에 마구 퍼지기 시작했다. 식물들도 끊임없는 증산작용을 통해 공기 중에 수증기를 배출해 내었다. 바다에서도, 강에서도, 호수에서도 배출된 수증기가 모여 하늘은 점점 무거워졌다.
 

 남자가, “널 죽을 만큼 사랑해.”라고 말을 했고, 그것을 들은 여자는 그를 죽일 만큼 째려보다가 아무 말 없이 뒤돌아 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무거운 하늘은 참지 못하고 물방울을 아래로 쏟아내었다. 정확히 저녁 7시 37분경에 비가 올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저 남자의 마음도 분명 흙탕물의 질퍽임처럼 암회색의 혼돈상태일 것이다.



  나는 즉시 Linkin park의 <Faint>를 검색하여 전송해주었다. 지난 달부터 정부의 규제에 따라 사람의 감정을 너무 자극하는 노래의 선곡은 금지되어 있는 터였다. 이처럼 축축한 날, 그 감정을 더욱 가라앉게 만드는 음악들을 선곡함으로 인해서 자살률이 더욱 높아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남자는 ’죽을 만큼 사랑하는 여자‘로부터 거절당한 것이 아닌가. 혹시 진짜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Faint는 가사 내용은 슬프지만, 약간의 파괴적인 느낌의 소리를 전달해서 한없이 침체의 늪으로 빠질 수 있는 저 남자를 조금은 붙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날 버리고 떠난 님을 향해 이빨 꽉 깨물게 하는 그런 음악이다. 아니면 같이 소리라도 지를 수 있게 하던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집에 돌아와 남자는 오늘의 선곡료에 50%의 보너스까지 얹어 주었다.


 의 직업은 <개인 BGM 선곡가>이다. 옛날 같았다면 Back Ground Music이라고 해봤자 영화나 TV같은데서나 쓰일 수 있는 거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엔 사람들의 삶에 음악이 깔린다.
 
 어쩐지 궁색해 보일 수도 있는 이별 장면에서도 BGM을 깔아주면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폼 나게 가슴 아픈 상황으로 바꿀 수 있다. 거리에서 시끄럽게 들어야하는 소음들을 음악으로 대신 할 수도 있고, 연인과 함께 늘 같은 느낌으로 살고 싶다면 커플시스템을 이용해서 같은 음악을 선곡 받을 수 있다.

 아까 그 남자처럼 매일매일 상황에 맞는 BGM을 제공받기위해 연정액권을 끊는 사람도 있지만, 경제력이 조금 부족한 젊은이들은 특별한 날 이벤트용으로 많이 주문하기도 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만난 지 100일이 된 커플에게는 김동률의 <기적>  과 같은 상품이 베스트셀러이다. 역시 좋은 음악이란 몇 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기쁘고 슬픈 순간에 함께하는 것이다. 요즘은 회사의 회식자리에서 무반주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서 MR을 제공해주는 특별 서비스까지 나왔으니, <개인BGM 선곡 시스템>은 날로 성장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간혹 황당한 주문도 있는데, 며칠 전 어떤 고객은 자기가 지금 한강대교 위에 와 있는데 여기서 뛰어내리면서 들을 좋은 노래가 없겠냐는 문의를 해왔다. 물론 전람회의 <유서> 같은 노래를 들으면 더없이 좋을 테지만, 항상 법의 예민한 감시를 받고 있는 우리 사업에서 그런 비윤리적인 주문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우리 회사의 CEO인 P의원이 그의 전 부인인 K의원과 요즘 여러 현안으로 부딪히고 있는 상황인데, 그 K의원이라는 사람이 자꾸만 국회에 ‘개인BGM선곡규제에관한법률’을 좀 더 강화해야한다는 압력을 넣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런 민감한 시국엔 무조건 조심하는 수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나는 결국 그 손님을 1시간여의 설득 끝에 한강다리에서 내려오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설득은 아니었다. 난 1시간 동안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 밖에는 한 것이 없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고객과의 만남은 철저히 금지되어있는 것이 회사의 원칙이었지만, 그는 결국 자살을 위한 BGM을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우리 고객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내 사무실 쪽으로 오게 해서 죽지 않았는지 확인을 한 후 술 한 잔을 사주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예상했던 대로 그에게는 보호해야할 프라이버시랄 것도 없었다. 한강다리에 올라섰던 그의 죽음선언은, 마치 우리가 ‘배고파죽겠네, 좋아죽겠네.’라고 할 때에 쓰는 죽음의 의미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줄곧 술을 마시면서도, ‘아, 내일 일찍 출근해야하는데, 밤에 들어가면 우리 딸이 술 냄새 난다고 또 구박하겠네.’라는 푸념을 했기 때문이다. 이미 내일을 계획하고, 걱정하는 그에게는 죽음을 갈망하는 삶이 존재할 뿐이다.